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뭉크-대표작-절규-내면세계-표현주의-화가

표현주의의 시작, 회화의 특징

인상주의에 반발하며 등장한 예술운동으로 1880년대 반 고흐의 작품에서 시작되어 프랑스와 다른 나라에 전달되었고, 1933년 나치의 탄압으로 해체되기 전까지 독일에서 가장 활발히 진행되었습니다. 이들은 무기력해진 독일 미술에 정신적 기운을 북돋아 주고자 하였으며, 개성적이고 자발적인 활동을 통하여 이를 실천하였습니다. 당시 성행하던 인상주의 작품들에 비하여 표현주의는 시각적인 효과나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냉정하며 환상적인 요소로 관객을 몰입시켰습니다. 회화에서 시작된 표현주의의 자극적인 정서는 문학과 연극, 음악 등의 장르에도 빠르고 폭넓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명랑한 분위기의 야수파와 매우 상반되게 강렬하고 불안한 느낌을 주며, 공포, 불안, 고통 등 인간의 내면 감정 중에서도 부정적인 부분을 표현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그런 불안정한 상태를 나타내기 위해 대상의 형태는 일그러지고 색깔은 자연스럽지 못하여 보는 이를 불편하게 하는 요소를 가집니다. 표현주의 회화는 긴밀한 구도로 몇 개의 강한 색채를 사용하여 단순한 색채대비 효과를 노리며, 비이성을 추구하고 반서구적이며 반전통적인 성격을 띱니다. 그리고 형태의 완성보다 그림의 내용인 문학성을 중요시하며 감정과 이념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것에 주된 목적을 두고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조형적인 완성도보다는 작가의 내면세계와 메시지 전달에 대한 직접적인 설명을 더 중시하였습니다. 또한 형태를 선으로 강조하고 단순한 색을 사용했으며, 입체감 없이 모든 색면을 평평하게 처리했습니다. 그림의 주제는 화가의 마음 상태와 작가 개인의 취향에 치우쳐 있었으며, 우리 내부 세계에 있는 가장 모순적이고 가장 폭력적인 것을 찾아내려는 반자연주의적인 경향을 띤다는 점 때문에 표현주의 작품은 객관성을 얻기 힘들다는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20세기뿐만 아니라 역사적으로 정신적으로 불안한 시대에 항상 표현주의적인 예술 양식이 나타났었는데, 이를 보면 표현주의는 인류 미술 역사에 있어 영구적인 경향이라 볼 수도 있겠습니다. 표현주의 예술의 진정한 목적은 인간의 감각과 감정을 표현하는 데 있었고, 회화의 요소인 선, 형태, 색채 등이 그림의 주인공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또한 데생에 충실하던 전통적인 기법을 배제하고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색채와 형태의 왜곡을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상처받은 인간 개인의 존재 가치와 윤리에 관한 냉혹한 분석과 풍자, 단순하면서도 치밀한 구도 등의 특징을 지닌 표현주의 작품들은 역동적인 구성과 선들로 시각적 효과가 돋보인 양식으로 발전하여 현대 미술의 정신적인 중심 역할을 하게 됩니다.

대표화가와 화파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로는 노르웨이 출신의 뭉크가 있습니다. 뭉크는 어린 시절 가족의 죽음과 그로 인한 공포를 경험하였고, 이 경험은 그의 수많은 작품들의 주제가 되었습니다. 뭉크의 대표작인 '절규'는 소리 지르며 절규하는 본인의 내면을 그린 그림으로, 커다랗게 뜬 눈과 벌어진 입, 형체는 비틀거리는 듯하며 다리 위를 걷고 있는 것 같지만 실은 내면의 세계에서 걷고 있는 자아를 나타낸 것입니다. 자아에 대한 발견, 잠재의식에 대한 관심, 내면세계에 대한 탐구는 그가 정성을 기울인 주제들이기도 합니다. 또한 이 작품은 예술에서 장식적인 요소를 거부하려는 표현주의 미술운동에 큰 자극을 주기도 하였습니다. 뭉크는 증오, 애정, 불안, 공포와 같은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고 선명한 감정을 격렬한 색채와 왜곡된 선으로 표현함으로써 표현주의 화가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습니다. 고흐와 고갱 또한 표현주의 회화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친 화가들입니다. 고흐의 밝은 색채와 선명한 원색의 역동적인 선들은 다진 색을 표현하는 것에 한정되어 있지 않고 내면의 심리를 묘사하는 적극적인 매체로 활용되었습니다. 고갱의 경우 원시세계의 이미지를 대상으로 삼아 그림을 단순하고 입체감 없이 그리면서 비사실적인 색채로 그의 정신세계를 표현하여 미지의 세계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표현주의 화가들은 다리파와 청기사파로 나눌 수 있습니다. 다리파는 키르히너, 놀데, 헤켈, 뮐러 등이 중심이 되어 창립했으며 과거와 미래를 연결 짓는 다리 역할을 한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들은 주로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하였고 전통적인 미술교육을 거부하고 회화적 기법을 스스로 터득하였습니다. 또한 각자의 개성적인 작업보다는 집단으로 작업하는 것을 좋아하였습니다. 특히 키르히너는 표현주의와 다리파의 예술관에 대한 많은 글들을 남기며, 그룹의 주도적인 역학을 담당하였습니다. 다리파 화가들의 특성은 강렬한 원색 사용과 고의적인 형태 변형을 들 수 있습니다. 그리고 불규칙하고 비뚤어진 선과 거칠고 빠른 붓놀림, 어색한 색채 등을 가감 없이 받아들여 그를 긴장감과 불안을 자아내는 혼잡하고 격앙된 도시 풍경과 여러 주제를 묘사하는 데 적용하여 자신들의 시도를 거칠고 대담하며 강렬한 작품으로 남겼습니다. 청기사파의 특징은 형태와 내용의 조화를 고려하면서 화려한 원색을 선호한다는 점입니다. 뮌헨을 중심으로 활동한 이들은 여러 나라의 미술가들이 함께 움직인 모임으로서 특히 프랑스 미술에 대해 좀 더 개방적인 태도를 보였습니다. 청기사파의 핵심 인물은 당시 독일에 거주하고 있었던 러시아인 바실리 칸딘스키였으며, 칸딘스키가 추구한 것은 정신세계를 즉흥적으로 표현하는 것이었습니다. 이후 그의 기법은 절대추상으로 발전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