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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린 시절
뉘른베르크가 예술의 중심지였던 시절 명성을 얻고자 하던 장인들이 여기저기서 몰려들었을 때, 헝가리 출신의 어느 금세공인과 아내도 있었습니다. 이 부부는 이곳에 정착해 1471년 아들 알브레히트를 낳았습니다. 아버지는 신앙심이 깊어 아이들에게 신을 공경하고 이웃에게 진실해야 한다는 가르침을 주셨고 어머니는 사랑이 많고 인자하셨습니다. 어릴 때부터 알브레히트는 예의가 바르며 대담했고 생각도 깊었습니다. 어린 나이였지만 강한 의지력과 성실함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알브레히트는 금세공 일을 열심히 배워 아버지의 작업장에서 함께 일도 하며 그곳에서 금속으로 주조할 작은 인물상들을 점토로 디자인한느 일을 주로 맡았습니다. 이때 배운 경험이 나중에 상아나 화양목으로 조각 작품을 만드는 데 큰 도움이 되었을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는 일을 하지 않는 날은 늘 그림을 그렸고 나이가 좀 들자 아버지에게 화가가 되고 싶다고 용기 내어 말했습니다. 아버지는 처음엔 실망하기도 했지만 결국 아들의 꿈을 지지해 주었습니다.
그의 다채로운 활동
당시 뉘른베르크에서 최고의 화가이자 조각가인 보겔무스의 수습생으로 들어가게 된 건 알브레히트가 15살 무렵이었습니다. 다른 학생들과 함께 3년 동안 보겔무스의 밑에서 즐겁게 예술을 배웠고 이곳에서 채색 방법을 배우고 목판화 만드는 방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젊은 알브레히트는 스승의 작업실을 떠나 더 넓은 세계로 떠나 4년 동안 이곳저곳을 떠돌며 가는 곳마다 일하며 공부를 했습니다. 부지런한 뒤러는 여러 가지 기술들을 배웠는데 상아공예가, 목공예가, 판화가, 조각가, 화가 등 다양한 활동을 했습니다. 그리고 토목 기사로도 활동하고 시와 산문을 쓰는 작가이기도 했습니다. 10년간 다채로운 활동을 하다 미술을 배우고자 이탈리아로 떠나기로 결심한 그는 이탈리아에서 2년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16세기의 이탈리아는 예술의 황금기였고 그는 라파엘로, 틴토레노, 티치아노와 같은 예술가들과 친분을 쌓았습니다. 이탈리아 예술가들도 알브레히트 뒤러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뒤러 또한 그들로부터 좋은 영감을 많이 받았습니다. 티치아노의 스승인 벨리니는 특히 뒤러의 섬세한 머리카락 표현을 좋아했습니다. 뒤러는 베네치아의 자유롭고 명랑한 분위기를 사랑했는데 수없이 오가는 곤돌라와 화창한 햇살, 루트와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사람들, 무엇보다 베네치아 사람들 자체가 큰 감동으로 다가왔습니다. 그에게 이탈리아는 너무나 매력적인 나라였지만, 애국자인 그는 고향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고향에 도착하자마자 그는 작업에 몰두하였고, 그는 뉘른베르크의 저명인사가 되어 시의회 의원 자리에도 올랐습니다.
판화가로 더 유명한 그의 대표작들
뒤러는 그림 그리는 속도가 빨라 규모가 큰 작품도 항상 1년 안에 완성했다고 합니다. 그의 작품 중 '동방 박사의 경배'는 현재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에 소장되어 있는데, 이 그림에서 동방 박사는 다른 인종으로 묘사되어 있고 가운데 한 명은 에티오피아의 흑인입니다. 박사들은 화려한 의복을 입고 아기 예수에게 신성한 예물을 바치고 있습니다. 한편, 푸른 옷을 입은 뉘른베르크의 성모는 사랑스러운 눈으로 아기 예수를 바라보고 있고, 자연에 대한 묘사가 아주 정교하고 사실적이라는 점도 놀랍습니다. 나비와 꽃, 딱정벌레, 돌담과 이끼까지 진짜처럼 표현되어 있습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경배'는 알브레히트 뒤러의 최고작으로 손꼽히는데, 구름 위에서 경배의 장면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가 중앙의 가장 위에 날고 있고, 그 아래 성부 하나님은 십자가에 매달린 성자 예수를 그 앞에 모인 왕, 추기경, 순교자, 영웅, 모든 계층의 사람들에게 보입니다. 그림 왼쪽 아래로는 멋진 풍경이 있고, 오른쪽 아래에는 뒤러 본인이 글씨가 새겨진 판을 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뒤러는 화가보다는 판화가로 더 유명합니다. 그는 독일 그림책의 아버지로 여겨지며 최초로 수많은 목판화를 디자인해 책 속에 삽화를 넣은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당시 그의 노력으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책에서 수많은 삽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습니다. 뒤러는 책 속에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그림보다는 현실적인 그림을 넣었습니다. 종교적인 그림도 있었고 기이하고 암울한 상상화도 있었는데 가끔은 인간미가 느껴지는 그림도 넣었습니다. 뒤러의 목판화 중 가장 유명한 시리지는 '요한계시록'의 장면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 마리아의 인생 등입니다. 그가 만든 동판화 중에는 '기사, 죽음 그리고 악마'가 대표작으로 꼽히는데 이 작품은 세계에서 가장 환상적인 동판화로 여겨집니다. 완전무장한 멋진 기사가 말을 타고 바위산을 오르고 있고 손에는 기다란 창을 들고 옆구리에는 날카로운 검을 차고 있습니다. 기사 앞에는 암울한 죽음이 모래시계를 쥐고 있고, 끔찍하게 생긴 악마가 모래시계 바로 뒤에서 기사의 영혼을 유혹하려는 듯 보이지만 기사는 악마나 죽음 따위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단호한 표정으로 제 갈 길을 가고 있습니다. 뒤러는 집에 인쇄 시설을 갖춰 놓고 언제든지 본인이 그린 그림을 책으로 펴낼 수 있었습니다. 알브레히트 뒤러는 독일 근대미술에 있어 중요한 미술가이며 다양한 지식을 배우고 기술을 습득하여 다재다능한 그를 보면 레오나르도 다빈치가 떠오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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