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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너리즘,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을 이어주다
오늘날 일상에서 더욱 많이 쓰이고 있는 '매너리즘'은 본인의 능력과 성과에 만족하여 일정한 상태에 머물러 있거나 그러한 상태에 빠져있는 것을 뜻하는데, 진정한 예술 정신이 결여된 채 단순히 기법상의 모방만을 일삼는 태도를 의미하는 르네상스 이후 발생한 미술 양식 매너리즘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작가들이 단지 르네상스 대가들의 기법만을 따라 했다는 의미에서 19세기 독일의 미술가들이 붙인 멸시하는 명칭입니다. 이러한 말의 쓰임새 때문인지 실제보다 많이 평가 절하되어 전달되었으나 근래에 들어서는 매너리즘 시대 예술가들에 대한 관심이 나타나고 있으며 독일 비평가들과 역사가들은 매너리즘을 엘 그레코에서 정점을 이룬 유럽의 예술 운동으로 소개하기 시작했습니다. 매너는 영어의 '틀에 박힌'이라는 용어가 어원인데, 13세기에서 15세기까지의 프랑스 궁정 문학이나 이탈리아에서의 '매너'라는 말은 전반적 인간 행동과 예술 양식에 사용되는 말로 영어의 '스타일'이라는 단어와 비슷한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매너리즘은 르네상스가 바로크 양식으로 넘어가는 사이인 1530년경부터 1600년 사이에 이탈리아에 잠시 나타났던 과도기적인 미술 양식입니다. 르네상스의 침몰이나 고전주의에 대한 반감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성숙기의 르네상스와 바로크 양식을 잇는 다리 역할이 되기도 했음을 인정받고 있습니다.
조화와 균형을 거부하다
기술은 어느 때에서든 한계가 있으므로 매너리즘 작가들의 소묘 기술이 날로 숙달되어 거의 완벽에 가까운 경지에 이르자 사람들은 미술의 발전이 끝나버리는 것은 아닌지 의심하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전쟁과 혁명이 가져다준 정신적 혼란 속에서 젊은 미술가들은 르네상스의 이상인 조화와 균형을 거부하고, 신체의 일부를 늘리는 등 과장하여 신기하고 부자연스러운 효과로 지루한 고전주의를 비틀기 시작했습니다. 마치 언제나 가지고 놀던 장난감이 지루해져 새로운 장난감으로 눈길을 돌리는 것처럼 당시 미술가들은 인체비례를 다소 과장되게 표현하거나 그림의 배경을 괴상한 분위기로 나타내는 등 사실적이라기보다는 신비하고 불안하며 몽상적인 기법을 새롭게 시도함으로써 이상화된 아름다움과 맞먹을 만한 기교를 보여주었습니다. 지금에 와서 그 기교에서 오는 건조함과 차가움이 작가의 주관적 성향을 극대화하고 르네상스와는 다른 이상을 지니고 내적 통찰력을 보여주고 있음을 재평가받고 있습니다만 인위적이고 기교가 강한 형식적인 면들이 실제보다 많이 부각되었다는 느낌이 없지 않습니다.
매너리즘을 대표하는 화가
매너리즘의 1세대 화가로 손꼽히는 파르미지아니노와 그리스 출신의 엘 그레코는 매너리즘의 기법을 가장 깊이 있게 표현한 화가로 평가받습니다. 특히 엘 그레코는 이탈리아에서는 혹평을 받았으나 스페인으로 건너와 인정을 받게 되는데, 곧이어 나타날 바로크적 역동성을 간직한 채 정신적 신비함과 모호함이 공존하는 독특한 회화세계를 이루었습니다. 엘 그레코의 '오르가스 백작의 매장'과 파르미지아니노의 '목이 긴 성모' , 틴토레토의 '최후의 심판, 만찬' 등은 인물들의 불안정한 사선구도와 격한 움직임, 강한 명암대비, 특이한 포즈와 실제보다 길게 표현한 인체, 원근법과 단축법의 과장, 차가운 색감, 비논리적인 공간배치 등 매너리즘의 특징과 느낌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특히 엘 그레코의 종교화에 나타나는 담대한 붓질과 밝은 톤, 신화에 적극 활용되었던 코렛지오의 섬세하고 부드러운 스푸마토 기법의 환상적인 분위기도 빼놓을 수 없는 매너리즘적인 기교에 속합니다. 또 다른 대표적인 화가로는 뒤러로 고전미의 신비를 탐구한 결과로 작품을 제작하거나 책을 펴내는 데 일생을 바쳤고, 홀바인은 당시 세부묘사에 빠져 있던 북유럽의 미술에 이탈리아 르네상스 미술의 특징을 성공적으로 결합시킨 화가로 꼽힙니다. 북유럽의 브뤼겔은 풍속화라는 새로운 영역을 개척하여 농민의 생활과 북유럽의 환상적인 풍경, 사회 현상을 비판하는 내용을 주제로 일삼았습니다. 20세기 초부터 매너리즘의 매력은 고전적인 균형미와 조화를 버리고 주관적이고 공상적인 경향으로 인간의 내면세계를 그리기 시작한 최초의 양식으로 재평가되고 있습니다. 18세기말 몇몇 낭만주의자들에 의해 관심이 일시 부활하였고 20세기 초현실주의자들은 자신들과 매너리즘 사이의 유사성을 발견하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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