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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벤스-자화상-플랑드르의-화가

 

그의 어린 시절

루벤스는 1577년 독일의 지겐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그날은 성 페테르와 성 파울의 축일이라 부모는 그의 이름을 페테르 파울이라고 지었습니다. 페테르 파울 루벤스는 상류층 집안의 일곱째로 태어났으며, 그의 부모님은 아이에게 좋은 교육을 시키고자 하였고, 어리지만 언어 습득력이 좋았던 그는 아버지에게는 라틴어로, 어머니에게는 플랑드르어, 선생님에게는 프랑스어로 말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루벤스가 9살이 되기 전 세상을 떠났고, 어머니는 아이들을 데리고 쾰른으로 돌아가 루벤스를 예수회 학교로 보내었는데 그 때문인지 그는 가톨릭교도로 성장했습니다. 공부를 좋아했던 루벤스는 10살 때 그리스어를 번역했고, 이미 3개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았는데, 이에 더해 영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도 쉽게 사용했습니다. 어린 루벤스는 어머니에게 미술 공부를 시켜 달라고 했고, 가족들과 의논하여 좋은 화가에게 보내기로 결정했습니다. 그에 루벤스는 당시 알베르트 대공의 궁정 화가였고 오토 반 벤에게 제자로 들어갔고, 스승은 그가 그려 온 그림을 보고 감탄을 금치 못 했다고 합니다. 작품 속에서 그의 천재성을 발견했기 때문입니다. 루벤스는 오토 반 벹 곁에서 몇 년간 머물렀고, 스승은 그의 부지런함을 좋게 보아 루벤스가 23살 무렵 이탈리아로 유학을 권했습니다.

 

이탈리아로 떠난 루벤스

알베르토 대공에게 소개장을 받아 이탈리아로 떠난 루벤스는 오랜 여정 끝에 이탈리아에 도착하게 됩니다. 그는 풍부한 색채로 유명한 베네치아 미술에 반하게 되었고, 특히 베로네세와 티치아노의 작품을 좋아했습니다. 루벤스는 베로네세의 스타일을 추구하여 '북부의 베로네세'라는 말도 종종 들었습니다. 우연한 기회로 만토바의 공작과 만나게 된 루벤스의 품성과 인상이 마음에 들어 공작은 그를 궁정 화가로 삼았습니다. 만토바에서 루벤스는 공작을 위해 그림을 그리고 뛰어난 작품들을 모사해주기도 하였습니다. 루벤스는 7개국의 언어를 구사할 줄 알고, 세련된 교양을 갖추었을 뿐만 아니라 임기응변에 능하고 궁중의 예절도 몸에 배어 있어 훌륭한 외교관의 자질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절단으로 파견되어 스페인을 다녀오기도 했습니다. 이탈리아는 루벤스에게 어마어마한 예술의 보물창고였습니다. 이탈리아에서 마음껏 그림을 그리고 위대한 화가들의 작품을 모사하며 8년의 세월을 보내고 있던 어느 날 어머니의 몸이 좋지 않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은 4개월이나 걸렸고, 결국 어머니를 보지 못하고 떠나보내야 했습니다. 

 

바로크 시대 플랑드르 최고의 화가

루벤스는 1609년 아름다운 플랑드르의 여인 이사벨라 브란트와 결혼하였고, 그의 작품에는 아내와 두 아들이 종종 등장합니다. 그는 아주 규칙적인 생활을 하였습니다. 새벽 4시에 일어나 미사에 참여하고 아침 식사를 했고 오전에는 몇 시간 그림을 그린 뒤 휴식을 취하고 점심을 먹었습니다. 다시 늦은 오후까지 그림을 그렸고, 한두 시간 정도 말을 탔습니다. 저녁 식사를 한 뒤에는 친구들과 즐거운 저녁 시간을 보냈습니다. 또한 루벤스는 책을 좋아했는데 가끔씩 그림을 그리는 동안 친구가 옆에서 책을 읽어주기도 했습니다. 그는 거의 모든 종류의 대상을 그림으로 옮겼으며, 신화를 주제로 하는 그림에서는 매일 마주치는 플랑드르 사람들을 여신과 신으로 바꾸어 놓기도 했습니다. 종교화에서는 플랑드르의 농민들이 사도, 성모, 순교자, 성인으로 표현되었고, 성스러운 장면을 그릴 때 인물 배치에서 천재성을 유감없이 발휘하였습니다. 루벤스의 걸작 가운데는 역사화도 많았는데, 그림의 배경에는 주로 교향 마을인 스틴의 풍경을 그려 넣었습니다. 화려한 복장의 왕과 귀족들의 그림도 많이 그렸는데 그들의 얼굴은 늘 화사하고 밝았지만, 인물의 성격이나 마음은 잘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루벤스는 아이들을 무척 좋아하여 아이 특유의 표정이나 몸짓을 표현하는데 뛰어났습니다. 특히 과일과 꽃으로 장식한 아이들이 가장 매력적입니다. 또한 루벤스는 인물 배치, 부드러우면서 빛나는 색채, 상상력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그림을 정말 빠른 시간 안에 그려냈기 때문에 붓을 든 마법사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습니다. 루벤스는 1500여 점이 넘는 작품을 남겼다고 합니다. 그의 명작들은 거의 말년에 탄생했는데 나이가 들어 통풍이 심해져 간 탓에 더 이상 큰 캔버스에 그림을 그릴 수 없었고 그리하여 작은 크기의 그림만 그려야 했으며 손가락까지 퍼진 통풍으로 결국 붓을 놓아야 했습니다. 루벤스는 1640년 갑작스러운 병으로 세상을 떠나게 되었고 이 소식에 안트베르펜 도시 전체는 슬픔에 빠졌습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다른 유럽 도시들에서도 그의 죽음을 애도했는데, 그만큼 그의 명성은 유럽 전역에 자자 했습니다. 그는 플랑드르 최고의 화가이며 플랑드르에 예술의 황금기를 다시 가져온 인물로 지금까지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