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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만주의의 등장
19세기 나폴레옹 정부가 혁명 이념에 맞게 내세운 신고전주의는 매우 경직된 형식의 미술이었습니다. 예술은 과학과 수학 같은 학문이 아니기에 인간의 감정을 정형화된 공식처럼 강요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인지하게 되며 화가들은 이에 동요하기 시작했습니다. 일부러 갈등을 조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들의 작품은 아름다움 보다는 조화로움을 걷어내고 강력한 자극과 충격으로 인간을 불편하고 동요하게 만듭니다. 아름다움을 벗고 그로테스크하면서 신비스러운 고통의 미와 무정형의 미를 추구하며 작품은 양식의 문제가 아닌 정신의 문제임을 본격적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로마나 그리스식의 엄격함은 버리고 중세 고딕 양식의 너그러움을 그리워했으며, 동양을 향한 이국적 취미까지 받아들여 순수한 상상을 자유롭게 표현하기를 원했습니다. 역사와 이념을 향하던 시선을 현실의 인간 감정의 세계로 돌려 역사적인 사건, 시사 문제나 셰익스피어 등의 문학에서 얻은 소재로 작업하였습니다. 낭만주의는 신고전주의와 비교하여 현실감각을 벗어나 아프리카, 동양, 남태평양 등 다른 세상으로, 고대나 중세, 르네상스 시대의 예술과 문학의 가공된 세계로 도피한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나 조형 형태에 대한 접근 방식에 있어서는 차이가 있습니다. 신고전주의의 균형 잡힌 정면성의 원리에 반하여 낭만주의는 상상력의 표현에 적합한 비대칭과 깊이 있는 표현에 적합한 사선구도, 모호한 분위기를 나타내는 색채 효과를 추구합니다.
감성과 자유를 추구한 미술 양식
낭만주의라는 말은 불규칙한 나무의 배치와 구불구불한 길, 길쭉한 호수 등 무질서하게 배치된 영국식 정원을 보며 영국 사람들은 정원을 낭만적으로 꾸미기 원한다고 말한 데서 유래되었습니다. 그래서 영국을 낭만주의의 발상지라고 인정하기도 합니다. 이전까지 예술은 정해진 원칙과 형식을 지켜 뛰어난 테크닉으로 훌륭하고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어내는 것이었는데 이 시기부터 우아함에 흠집이 가는 것을 감수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게다가 아름다움 뿐 아니라 추한 것에도 미의식이 있음을 발견한 점은 낭만주의를 회화의 혁명으로 불리게도 하였습니다. 낭만주의는 꾸민 듯한 것에 반대되는 말이기도 하지만 간단히 정의하기는 어렵습니다. 우리가 자주 쓰는 낭만적이라는 말의 의미와도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형식에 얽매이지 않는, 원칙이나 조건을 마음에 두지 않고 원하는 것을 용기 있게 실천하는 사랑을 낭만적인 사랑이라고 부르는 걸 보면 말입니다. 창의적 상상력은 낭만주의 예술의 가장 중요한 근본으로 감성, 색채, 생동감과 개인의 특성을 중시한 미술 경향입니다. 이전의 고전주의나 바로크 시대에도 이러한 기운이 있었으나 그때는 특별한 양식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낭만주의는 이성보다는 감성을, 질서보다는 자유를 추구한 미술 양식입니다. 상상력과 강렬한 열정을 가지고 질서와 통제, 고정된 틀을 거부하고 개성적인 표현과 다양한 주제를 통해 정신적 해방을 강조하여 형식에 엄격한 고전주의와 대조를 이룹니다. 사람이 사회를 살아가며 질서와 규율, 법칙과 같은 것을 완전히 거부할 수는 없지만, 낭만주의의 시대에 대한 반항은 자유를 열망하는 인간 본연의 욕구와 시대적 이념을 적절히 녹여 예술 전반에 신선함을 일으켰습니다.
초기 낭만주의의 주요 화가들
영국의 낭만주의 화가들도 새로운 주제를 다루기 시작했는데, 비장하고 기괴하며 지나치다 싶은 영웅적인 주제를 좋아했고, 긴장된 선을 이용한 드로잉과 담대한 음영으로 대상의 윤곽을 뚜렷이 나타내었습니다. 영국 초기 낭만주의의 주요 인물인 윌리엄 블레이크와 존 컨스터블은 영국 낭만주의 풍경화라는 새로운 장르를 만들어냈습니다. 풍경화를 그리기에 가장 적합한 수채화도 이 시기에 생겨났고, 이들의 작품은 공기, 빛, 색채의 극적인 효과를 강조하여 자연을 역동적이며 웅장하게 묘사한 것이 특징입니다. 프랑스 초기 낭만주의의 주요 화가로는 앙투안 장 그로와 제리코가 있습니다. 앙투안 장 그로는 당시의 나폴레옹 전쟁을 주제로 전투의 극적인 장면들을 그렸고, 제리코는 '메두사의 뗏목'과 정신병자들의 초상화에서 개인의 영웅적 행위와 고통을 묘사함으로 1820년경의 낭만주의 운동을 선도했습니다. 프랑스의 가장 위대한 낭만주의 화가는 외젠 들라크루아로, 그는 자유분방하고 표현력이 풍부했으며, 감각적이고 화려한 색채와 역동적인 구도를 사용하여 북아프리카 아랍인의 생활에서 프랑스혁명에 이르기까지 이국적이며 대담한 주제를 선호했습니다. 들라크루아의 감각적인 색채와 자유로운 붓질, 역동적 구성은 낭만주의 기법의 극치입니다. 특히 '지옥의 단테와 베르길리우스'를 비롯한 몇몇 작품은 들라크루아의 이국적 취향에 의한 후기 작업으로 낭만주의의 특징을 제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는 본질적인 것은 주제로 표현해 내려는 것보다 그려지는 것과 그리는 방법, 즉 화가의 주관적 표현력에 있음을 보여주길 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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